산후조리원. 그리고 인큐베이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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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산 후 병원에 입원해 있는 동안, 오전 시간에 아이를 보러 가던 그 순간들이 아직도 생생하다.

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처음 만난 아이는 내가 세상에서 본 것 중 가장 소중한 존재였다.

가슴 속에서 벅찬 감동과 애틋함이 올라왔다.

그때의 기억은 마치 따뜻한 햇살 같은 잔상으로 내 마음에 남아 있다.

 

이틀이 지나 산후조리원으로 옮길 날, 병원 입구에서 걸어서 1분도 안 되는 거리였다.

계절은 5월의 중순, 부드러운 늦봄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그 짧은 거리가 왜 그렇게 멀게 느껴졌는지. 혹시라도 아이가 찬 바람을 맞아 감기에 걸리면 어쩌나 싶어,

이불로 단단히 감싸고 얼굴만 살짝 내놓은 채 걸었다.


그 1분 동안 나는 한 발 한 발이 조심스러웠다.

이 작은 생명을 품고 걷는 그 시간이 그렇게나 무겁고 불안했던 건, 내가 처음 아빠가 되었기 때문이었을까.

 

조리원에서의 2주는 배우는 시간이었다.

아내는 몸을 회복했고, 나는 아이와 보내는 소중한 시간을 조금씩 배워갔다.

기저귀 갈기, 안아주기, 수유 도움 등 처음엔 서툴렀지만 아이를 안고 있을 때마다 마음이 차분해지는 걸 느꼈다.

모든 것이 잘 흘러갈 줄만 알았던 그 시간 속에서, 한 가지 예고 없이 찾아온 일이 있었다.

 

"아이가 산소포화도가 조금 떨어지고 있습니다."

의사 선생님의 차분한 말은 내 마음을 흔들었다.

"하루 더 지켜보고 집중치료실로 옮길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나는 걱정스러웠다. 아니, 사실 무척 두려웠다.

그러나 그 순간, 내가 두려움을 드러낼 수는 없었다.

내가 무너지면 더 불안할 아내를 생각하니 안 되는 일이었다. 나는 담담한 척하며 의사의 이야기를 들었다.

가슴속에 가라앉지 않는 불안을 억누르며 아내를 안심시키려고 노력했다.

 

결국 이틀 뒤, 아이는 집중치료실 인큐베이터에 들어갔다.

마음이, 우리 아이. 나는 하루에 한 번 면회 시간을 기다렸다가 작은 인큐베이터 안에서 꿈틀대는 마음이를 바라보았다.

작은 손가락, 고사리 같은 발끝 하나하나가 그렇게 귀엽고 사랑스러웠다.

하지만 그 모습이 또 얼마나 안쓰럽던지. 눈물이 자꾸 나왔다.

 

그러나 아내 앞에서 울 수는 없었다.

나는 다른 생각을 하려고 애썼다. 우울한 기분을 몰아내려 농담도 던졌다.

"마음이 발이 인큐베이터에서 삐져나오겠어. 너무 크네."

"다른 아기들은 다 작은데 우리 애는 여기에 대장이야."

억지로 웃음을 만들며, 아내도 잠시나마 웃게 만들고 싶었다.

하지만 마음 한편으로는 묵직한 무언가가 계속 가라앉았다.

 

아내는 자꾸 자기 탓을 했다.

"출산 전에 내가 너무 많이 먹어서 아이가 커진 걸까?"

"괜히 자연분만 고집해서 아이를 힘들게 한 건 아닐까?"

그런 아내를 보며 나는 더 단단해져야 했다.

이럴 때 다정 한 말이나 위로의 말이라도 해 주면 좋을텐데.

그런걸 잘 해보지도 않던 나의 입술은 몇번을 달싹이기만 할 뿐 쉽사리 열리지 않았다.

속상해 하는 아내의 모습이 안타까워 나는 아내의 손을 꼭 잡았다.

그게 내가 당장 해 줄수 있는 전부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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